연중 제17주일 (02/7/28) (1열왕 3,5. 7-12; 로마 8,28-30; 마태 13,44-52) 중동 문학의 정수라 일컬어지는 책이 있습니다. 서구에는 <아라비안 나이트>로 알려진 <천일야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화처럼 소개되어 아동 문학으로 인식된 적도 있으나 사실 이 책은 상당히 야한 내용을 담고 있는 성인 소설이지요. 이 <천일야화>에는 각각 독립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는데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신밧드의 모험" 등도 유명하지만 그중에서도 "알라딘과 요술램프"가 압권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 알라딘은 램프를 문지르며 램프의 요정을 불러내지요. 그러면 램프의 요정은 알라딘의 소원을 들어줍니다. 만일 이 램프의 요정이 여러분 앞에 나타나 단 하나의 소원만 들어준다고 한다면 과연 무슨 소원을 말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일이 구약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지혜를 달라고 청합니다. 정확한 원문에는 선악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나와있지요. 하느님은 솔로몬을 크게 칭찬하십니다. 그가 무병장수나 부귀영화, 전쟁에서의 승리와 같은 개인적인 영광을 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백성을 올바로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야훼의 백성이 온 세상에 번영하기를 바랬습니다. 그가 이렇게 청한 밑바탕에는 자신을 어린아이로 폄하하면서 하느님께 순종을 맹세한 겸손한 마음이 깔려있습니다. 솔로몬은 교만하지 않았기에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자신보다는 백성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았습니다. 부귀영화에 정신을 빼앗긴 그의 말로와는 무척 대조되는 모습이죠. 이처럼 오늘 독서에서 솔로몬이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고서 주님께 청했다는 것은 복음과 그대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 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남의 땅에서 발견한 것을 바로 취득할 수 없는 사회적 관습에서 비롯된 말씀인데, 따라서 그 보물이 묻혀있다는 걸 땅 주인에게 숨기고 그 땅을 차지하려는 것이죠. 전 이 말씀을 들으며 어렸을 적 소풍을 갔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전 워낙 운이 없는 사람입니다. 복권을 사도 천 원 이상 당첨된 적이 없었고 각종 행사장에서 주는 경품도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습니다. 하다못해 상품을 산 구입자 중 반을 주는 사은품도 타본 적이 없으니까요. 이런 불운은 초등학교 소풍 때 보물찾기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보물찾기 기억나시나요? 작은 종이를 풀밭이나 나무 틈에 숨겨놓고 학생들이 그 종이를 찾게 하는 게임 말입니다. 그 종이에는 공책, 연필, 과자 등 작은 상품들이 적혀있었지요.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물건을 타고싶어서 열심히 보물을 찾아보았지만 눈씻고 찾아봐도 보물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친구들은 두 세 개씩 보물을 발견하는데 어찌나 울화통이 터지던지요. 하나만 달라고 해도 그 녀석들은 절대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종이에 김치냉장고, 대형 TV, 가스오븐렌지 등이 적혀있다면 어린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 종이에 100억이라고 적혀있다면 어찌 될까요? 아마도 복음에 나온 인물은 100억이라고 적혀있는 종이가 아니라 100억짜리 보석을 발견했나 봅니다. 그는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보물이 묻혀있는 밭을 삽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복음에서 "가진 것을 다 팔았다"는 것은 단순히 재산을 모두 정리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동안 가지고 있던 과거의 모든 것, 즉 가족, 학력, 경험, 재물 그 모든 것을 정리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과거와의 결별이며 새로운 시작으로 나아가는 크나큰 발걸음, 곧 인생의 대전환인 것입니다. 그가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예수님에 의하면 그게 바로 하늘 나라입니다. 대관절 하늘 나라가 무엇이기에 가진 걸 다 팔아서 그 하늘 나라를 차지하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은 하늘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00억 짜리 복권입니까? 아니면 영화에 나오듯 흰 옷을 입은 천사가 날아다니고 흰 수염을 가진 하느님이 계시는 곳입니까? 오늘 복음의 후반부에서는 그렇게 하늘 나라를 향해 모든 걸 바친 사람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지난 주 복음인 "가라지의 비유"와 직접 연결되는데 마태오복음 25장에 나오는 양과 염소가 갈리는 말씀처럼 마지막 날에 구원받을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갈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토록 중요한 하늘 나라, 인생의 모든 걸 걸어서 얻어내야만 하는 그 하늘 나라가 정작 무엇인지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 하늘 나라를 위해 모든 걸 바치라고만 하셨지 그게 무엇인지 설명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린 더 복잡해지기만 합니다. 우린 주님의 기도, 전반부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우리가 아무런 생각없이 의무적으로 중얼거리는 기도 속에 우린 매번 하느님 나라를 염원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말이죠. 그런데 어쩌면 하늘 나라는 우리가 영원히 갈 수 없는 곳인지도 모릅니다. 주님의 기도를 보자면 하늘 나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들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까, 아니면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까?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뜻과 내 뜻은 이질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상당 부분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가치관에 물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내 뜻과 하느님 뜻이 서로 상반된다면 우린 너무도 당연하게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랄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찾아오는 하늘 나라는 더 멀어져만 갈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하늘 나라가 왔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하늘 나라를 밀쳐버리고 있습니다. 하늘 나라가 대단한 곳일까요? 거룩하고 순결한 천사들만이 사는 곳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가 사는 이 땅, 잠실 성당이라고 하는 이 공동체 안에서도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그게 바로 하늘 나라일 것입니다. 그곳에 예수님이 계시고 그곳에 넘쳐나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매가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바닥에 반짝이는 물건이 있어 자세히 보니 꽤 값나가 보이는 목걸이었습니다. 목걸이 중간에는 진주같아 보이는 작은 보석도 박혀있었지요. 그 자매는 주인을 찾아주려고 아무리 두리번거려보아도 인적이 드문 곳이라 주변에는 목걸이 주인같아 보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순간 그녀의 머리 속에는 단돈 백만원이 없어 카드빚에 몰려있는 자신의 처지가 생각났습니다. 조금 있으면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녀는 그 목걸이를 들고 금은방에 찾아갔습니다. 금은방 주인은 돋보기를 끼고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칠, 팔십 만원은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녀는 그 목걸이를 다시 들고 금은방을 나왔습니다. 그녀는 그날 오후 자신이 봉사 활동 다니는 시설에 가야 했습니다. 그 시설은 의탁할 곳이 없는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곳입니다. 그 시설의 책임자는 일 주일 전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IMF를 맞이하여 요즘 후원금이 적게 나온다고, 그래서 다음 달 쌀값이 걱정이라고 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에 찾아간 그 시설에서 저녁 배식을 해주는데 예전의 반찬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풀뿌리 반찬에도 두 눈을 말똥거리며 밥을 푸는 자매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곳을 나오면서 작은 봉투에 목걸이를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봉투를 시설의 우편함에 집어넣었습니다. 그 자매가 목걸이의 주인을 찾아주지 않고 마음대로 처분한 것은 잘못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하늘 나라는 그녀에게 조금 더 가까이 오지 않았을까요? "하늘 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 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